말레이시아에서 2017년 2월 13일 오전 피살된 김정남은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까지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장남이자 유력한 후계자로 주목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김 국방위원장의 눈 밖에 나면서 후계 구도에서 밀려났다. 이후 이복동생인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집권하면서 오랜 기간 해외를 떠돌아야 했다고 합니다!
김정남은 1971년 5월 10일 평양에서 김 국방위원장과 두 번째 부인 성혜림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모친인 성혜림이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오랜 투병생활을 했기 때문에 고모인 김경희의 보살핌 속에 자랐다. 이런 인연으로 김경희·장성택 부부는 김정남의 후견인 역할을 해왔다. 2013년 장성택 숙청의 단초 중 하나가 장성택이 김정남을 후계자로 밀었기 때문이라는 관측도 있습니다!
김정남은 1980년대 모스크바를 거쳐 스위스의 국제학교와 제네바대학교 등에서 9년간 유학생활을 했다. 그는 IT(정보기술) 분야에 관심이 많아 1998년 북한의 IT 정책을 주도하는 조선컴퓨터위원회 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이후 만 24세였던 1995년 인민군 대장 계급을 받는 등 한때 후계전선에서 앞서나가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이듬해 이모인 성혜랑이 미국으로 망명하면서 입지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1990년대 후반 고위층 자녀들에게 “내가 후계자가 된다면 북한은 개혁·개방을 하게 될 것”이라고 발언했다는 얘기도 떠돈다. 이 발언으로 아버지인 김 국방위원장이 김정남에 대한 권력세습을 포기했다는 ‘설’도 있다. 2001년 4월에는 도미니카공화국 위조 여권으로 일본 밀입국을 시도하다 적발돼 중국으로 추방되면서 ‘후계구도 경쟁’에서 완전히 밀려났음이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김정남은 이후 주로 중국과 마카오 등지에 머물면서 김 국방위원장로부터 직접 지시를 받는 무기 수출 총책임자 역할을 담당했다. 아버지의 비자금을 관리하는 책임자로 활동했다는 것입니다!
김정남은 2009년 1월 이복동생인 김정은 위원장이 후계자로 내정된 이후 북한 땅을 밟지 못한 채 완전한 ‘국제 미아’로 전락했다. 이복동생인 김 위원장이 김정일 사망 후 정권을 장악하자 김정남에 대한 지원도 사실상 끊었다. 김정남은 북한을 떠나 동남아시아와 중국 등을 옮겨다니며 사실상 해외 도피 생활을 해왔다. 일부 언론은 김정남이 주로 말레이시아에 체류하면서 내연녀가 있는 싱가포르를 오갔다고 전했다. 첫째 부인 신정희와 둘째 부인 이혜경 사이에 아들 김한솔과 딸 김솔희를 얻었으나, 이들과는 따로 생활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김정남은 이복동생인 김정은 후계구도가 완성되자 2010년 외국 언론에 ‘3대 세습에 반대한다’는 등 북한 체제를 비판하기도 했다. 이후에도 일본 언론과 인터뷰를 하고 한국 언론에도 모습을 드러내는 등 돌출행동을 일삼아 북한 당국으로부터 요주의 인물로 감시를 받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이던 고모부 장성택으로부터 “말조심하라”는 충고를 받았을 정도였습니다!
그는 고모부인 장성택이 처형되고, 고모 김경희마저 공개석상에서 자취를 드러내지 않으면서 모습을 감췄다가 2014년 파리에서 목격되기도 했다. 그간 해외 목격담과 함께 종종 ‘암살설’이 나오는 등 김정남의 신변이 아버지 생전에 비해 안전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예측은 꾸준히 제기됐었습니다! 한편 '김한솔 KBS PD'는 동명이인이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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